개요&역사

  • home
  • 소개
  • 개요&역사

복암리고분 어제

선산, 고대 무덤을 지키다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사람들을 복암리 고분을 조산(造山, 쌓아서 만들어 놓은 산), 또는 ‘말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복암리의 뒷산인 거마산(들마산) 자락을 풍수지리상 말형국으로 보았을 때 중동마을 고인돌은 말발굽, 복암리고분군은 말똥 이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복암리 고분이 위치한 이곳 다시들은 일제 말기부터 경작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70년대 중반, 지금과 같은 네모 반듯한 모습의 논으로 변화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7기의 조산 중 3기가 없어지고 4기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 3호분은 당시 안동 권씨의 선산으로 이용되고 있어, 훼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복암리고분 발굴

고대의 아파트 형 무덤

복암리3호분 조사완료 모습
복암리3호분 조사완료 후 현장공개 당시

복암리고분은 1980년에 발행 된 ‘『나주군지(羅州郡誌)』’이후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간단히 소개만 되어 오다가, 1995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영산강 유역 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를 시작 하였습니다. 조사결과, 복암리 3호분에는 영상강유역에서 나타난 모든 형태의 무덤들이 집합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한 모양새로 인해 ‘아파트형고분’이라는 발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고대 문화의 하이브리드

토착무덤 옹관이 안치된 일본양식 돌방
백제양식돌방
다양한 유물출토

복암리3호분에는 모두 41기에 달하는 다양한 모양의 무덤, 즉 우리 지역 고유의 무덤,백제양식의 무덤, 일본양식의 무덤이 함께 모여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무덤 안에서는 묻힌 이의 물건들과 함께 백제, 신라, 가야, 일본 등에서 가져온 부장품도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고대인들의 역동성과 왕성한 대외교류 활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암리 고분전시관터에서 나타난 2,000년 전 모습

시랑골은 낭동마을의 옛이름입니다. 시랑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첫번째는, '시랑'이란 신라시대 이후 고려시대까지 관직이름인데, 고려 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 관직을 가진 사람이 마을로 들어와 살면서 '시랑골'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실안'이라는 골짜기나 산속으로 쑥 들어간 곳을 칭하는 우리말이 변하여 '시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 시랑골은 후대인 고려 말 삼봉 정도전이 2년간 귀양살이를 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 복암리전시관 터에는 랑동유적이라는 고대유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을 발굴 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확인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2,000년전 중국 동전인 '화천'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중국이나 낙랑과 활발하게 교류 했었던 사실을 알려 줍니다.

복암리고분 오늘

복암리고분 전시관
전시관 내 3호분 전시모습

연혁

년월 내용
1995년 11월 ~ 1998년 4월 복암리고분군 기초조사 및 발굴조사
2004년 4월 ~ 2004년 7월 랑동유적 발굴조사(나주복암리고분전시관 부지)
2011년 8월 복암리고분전시관 착공
2015년 10월 복암리고분전시관 준공
2016년 3월 1일 동신대학교 위탁운영 협약 및 개관준비
2016년 4월 30일 복암리고분전시관 개관